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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서 / 부제 : 우리에게 음악의 가치란? 본문

Reading/GREEK AND ROMAN MYTHOLOGY

오르페우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서 / 부제 : 우리에게 음악의 가치란?

모노산달로스 2022. 12. 18. 00:32

오르페우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서 - 그리스 로마 신화로 생각 넓히기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훌륭한 음악은 슬픈 마음을 위로해주고 때로는 신이 난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음악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매우 고귀한 문화이다. 심지어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들도 노래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소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생명체가 가진 하나의 특별한 능력인 것이다. 

 


 

리라를 들고있는 아폴론 신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음악의 신'이라고 하면 '아폴론'이 있다. 아폴론은 태양, 예언,  궁술, 의술 등등... 다양한 분야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는 또한 음악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의 아들 '오르페우스' 또한 훌륭한 리라 솜씨로 유명하다. 오늘은 음악으로 지옥을 헤쳐나간 오르페우스 사랑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음악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오르페우스의 사랑

 

올림푸스의 신들에게도 음악은 중요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할 신들이 필요했는데 그들이 바로 '무사이 아홉 자매'이다. 이들은 '제우스''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함께 9일 밤을 지내고 태어났다. 각 여신들은 역사, 천문학, 비극, 희극 등등 다양한 분야를 맞아 노래했다. 아홉 자매 중 막내인 '칼리오페'는 현악기를 관장했는데 이 여신과 아폴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오르페우스'이다. 오르페우스는 아폴론에게 리라를 배웠는데 음악의 신들 사이에서 나온 자식답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음악의 힘은 매우 강력했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켜면 그 순간만큼은 모두 넋을 놓고 음악을 감상했다. 풀과 나무들도 모두 노래에 집중하고 사나운 들짐승들 조차도 그 노래를 들으면 차분하게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라는 처녀와 혼인하게 되는데, 이 둘의 결혼식은 매우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결혼의 신 휘메나이오스' 또한 참여했는데 이 신이 찾아왔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였으면 밝게 빛나는 횃불을 들고 축복을 내려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휘메나이오스는 결혼식에서 횃불을 밝히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 둘은 서로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에우뤼디케가 들판을 걸어가다가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이 청년의 이름은 에아리스타이오스로 에우뤼디케가 결혼한 몸인지 모르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에우뤼디케가 도망가자 청년은 쫓아갔고 정신없이 뛰던 그녀는 그만 독사의 꼬리를 밟아버리게 된다. 

 

 

아내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오르페우스는 한탄하며 슬픔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듣고 초목들 또한 저승을 원망하며 고개를 숙이고 들짐승들이 목이 매여 먹이를 먹지 않았다. 보다 못한 '데메테르 여신'은 딸림 여신을 통해 오르페우스에게 저승으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데메테르의 딸 또한 저승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도 다른 글에서 서술하겠다)

 

 

하데스에게 에우뤼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오르페우스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는 리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 깐깐하다는 뱃사공 카론 또한 노래를 듣자 오르페우스를 배 위로 태웠다. 이후 저승 길을 막는 다른 강들 또한 그의 리라 소리에 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렇게 손쉽게 통곡의 강, 시름의 강, 불길의 강, 망각의 강을 통과하고 '하데스'를 만났다. 그의 성 앞에서 노래하며 아내인 에우뤼디케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저승에서 내려지던 형벌들이 모두 멈추었다. 벌을 받던 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넋을 놓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하데스가 눈물을 흘리며 망령인 에우뤼디케를 내주면서 이야기했다.

 

 

 

 

저승을 나가기 전까지 절대 에우뤼디케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
그것이 저승의 규칙이자 내 눈물의 값이다.

 

 

 

 

둘을 이승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오르페우스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에우뤼디케가 뒤따라갔다. 둘은 손을 잡고 가며 중간중간 오르페우스가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소?"라고 물었고 에우뤼디케가 "뒤따라가고 있으니 돌아보지 마세요"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그 둘은 저승 입구까지 걸어갔고 오르페우스가 이승에 발을 내놓는 순간 그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에우뤼디케가 미쳐 저승에서 발을 빼지 못한 상황에서 뒤를 돌아봤고 그 순간 에우뤼디케는 다시 저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르페우스가 다시 저승으로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카론이 노래를 듣고도 배에 태워주지 않았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을 원망하는 노래를 하며 이승으로 돌아왔고 후에 에우뤼디케를 그리워하며 혼자서 살아간다. 그는 다른 처녀들의 고백들을 모두 무시했고 이는 처녀들의 분노를 사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화를 참을 수 없던 한 여인이 창을 오르페우스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에 창은 그만 날아가다가 멈추어 바닥에 떨어졌다. 또 다른 여인들이 모여 돌을 던졌지만 리라 소리에 돌들 또한 오르페우스의 몸에 닿지 못했다. 

 

 

오르페우스의 시신을 들고있는 처녀 (1865) - 귀스타보 모로

 

 

결국 여인들은 모두 모여 소리를 질러 오르페우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고 창을 던져 오르페우스를 맞췄다. 이후 오르페우스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져 강에 흘려내려갔다. 무사이 자매들은 슬퍼하며 오르페우스의 시신을 모아 레이베트라에 장을 지냈다. 오르페우스의 무덤 위에서 우는 꾀꼬리들의 울음소리는 다른 지방의 새들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전해진다. 제우스 신 또한 오르페우스를 기리며 그의 리라를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

 

 

오르페우스는 혼령이 되어 저승으로 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에우뤼디케를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엘뤼시온이라고 불리는 행복한 들판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고 있다. 이제는 둘 모두 혼령이라서 뒤를 돌아본다 해도 어떠한 비극도 일어나지 않는다.

 

 


 

 

음악이 가지는 가치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조금 길지만 책에서 읽은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간추려서 서술해 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것이 이 오르페우스의 사랑 이야기이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을 통해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꽤나 무시무시할 정도의 위력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무엇일까? 음악의 정의는 박자, 가락, 음성을 갖가지 방식으로 조합하여 노래나 악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감정을 아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신화에서도 자연물들이나 신들이 모두 오르페우스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르페우스가 가진 무기는 바로 상대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들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감정 표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음악은 상당히 유용하다. 내가 현재 가진 감정들이 증폭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슬픈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슬픈 감정이 고조된다. 행복한 노래를 부르면 행복한 감정이 배가되고 신나는 노래를 트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주변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운 부분이다.

 

 

 

100인 인간을 말하다 - 넷플릭스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100인 인간을 말하다'라는 사회 실험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다양한 재밌는 실험이 나오는데 그중 음악과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그룹을 A와 B로 나누고 식사를 제공한다. 각 그룹은 식사를 하면서 멋진 클래식 공연은 감상할 수 있는데 A그룹은 밝고 활기찬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여주고 B그룹에서는 어둡고 느린 노래를 연주하였다. 이후 음식에 대한 맛 평가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밝고 활기찬 노래를 들으면서 식사를 한 A그룹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즉 음악 하나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사실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듣는 것은 위로받는 느낌이 들고 감정적을 표출하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결국 우울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고 활기찬 노래를 틀고 긍정적으로 살고자 하면 어떨까? 슬픈 상황을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또 운동을 할 때는 힘나는 노래들을 책을 읽을 때는 차분한 노래를 틀면 능률 향상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음악은 이 처럼 '감정 조절제' 역할도 하지만 생물체로서 하나의 '매력'으로서 역할도 한다. 실제로 인간뿐만 아니라 새들이나 일부 짐승들 또한 노래로 이성을 유혹하기도 한다. 예전부터 '음악가'들은 엔터테이너로서 큰 매력을 가지곤 했다. 노래를 잘하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이 멋있어보이고 아름다워보이는 효과가 있다. 우리 모두 현대사회에서도 느끼지않는가? 단순히 미디어에 나오는 노래 잘하는 가수들 뿐만 아니라 동내 노래방에서도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은 큰 호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통해 얻는 매력은 어마어마하다. 다행히 고무적인 부분은 우리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매력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 국민을 만족시키는 가수가 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나 자신을 가꾸는 좋은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실용음악 학원이 생겨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대시대부터 현대시대까지 음악은 강력한 하나의 무기이다. 이성을 유혹하는데에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큰 명예를 얻기 위해서 등등... 사용하기에 따라서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1864) - 프레더릭 레이턴

 

 

지금까지 음악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이 모든 걸 떠나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음악은 다양한 분야로 나뉘고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감상을 한다. 그런 다양한 취향들을 존중하는 것은 현대인으로서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기본 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 장르에 있어서 그것을 비난하거나 욕하지 말고 품어주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주변인들과 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자비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자제하자. 신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노래한 것처럼 우리들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남기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 시작은 서로 인정하고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사랑하자, 세상의 모든 음악들은 아름답다.